제목 김정규사무총장(문화일보)기고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8-08-31 12:36 조회수 621
링크링크 http://v.media.daum.net/v/20180824142027658?f=o [272]

<여론마당>
장진호전투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기억하자
문화일보 2018.8.24

“전쟁에서, 패배 다음에 비참한 것은 승리다.”

영화 ‘워털루’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웰링턴 장군의 독백이다. 

영웅 나폴레옹을 패퇴시킨 젊은 장군은 승리의 환희에 도취돼 자신의 승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장을 둘러봤는데, 길가에는 부하들의 시체와 부상병들이 즐비했다. 웰링턴 장군의 독백처럼,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불문하고 비참할 수밖에 없다. 

그 비참한 전쟁 중에서도 장진호 전투는 더욱 잔혹했다. 1950년 11월 27일, 중공군 12만 명의 포위 공격을 받은 미 해병 제1사단 등 1만5000명의 유엔군은 처절하고 혹독한 15일간의 전투를 벌였다. 

4500명이 전사하고 7500명이 부상한, 미 해병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다. 비전투사상자 대부분은 동상환자였다. 공격했던 중공군 제9병단은 전사 2만5000여 명, 부상 1만2000여 명이 발생해 사실상 무력화됐다.

장진호가 있는 개마고원 일대는 고도 1000m의 산악지형으로, 당시 낮 기온 영하 20도, 밤 기온은 영하 32도였다. 중기관총은 반드시 부동액을 채워야 했고 경기관총은 불발 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사격해야 했다. 공중에서 투하되는 보급품도 땅에 부딪혀 깨지는 바람에 탄약은 25% 정도만 사용 가능했다. 참호를 파는 축성은 거의 불가능했고, 부상자를 위한 수혈관이나 모르핀도 얼어버려 사용이 어려웠다.

미 해병대는 전사한 전우의 명예를 생각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부상자와 시신을 회수하는 전통이 있다. 동료 전사자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또 다른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전통에도 불구하고 장진호 부근에는 1000구 이상의 미군 유해가 남겨졌다. 

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북한에서 인도받은 유해의 3분의 1가량이 장진호 전투 전사자였다고 한다. 최근 미국으로 송환된 유해 55구 중 상당수도 장진호 전투 전사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뒤늦은 장진호 전투 영웅의 귀환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과 유엔군들이 버텨준 덕분에 10만 명의 아군과 10만 명의 주민이 흥남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 

어떤 이의 희생이 다른 어떤 이의 삶으로 연결됐다면, 살아남은 이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에서 2016년 ‘장진호전투영웅 추모행사’를 시작한 것은 우리를 위한 다른 이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순전한 의무감의 발로였다. 십시일반 회원들의 정성으로 행사를 치렀다. 

정부에서 행사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해 지난해부터는 비용 일부가 지원되고 있다. 올해도 제3회 행사를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치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다른 나라 군인을 위한 추모제는 ‘장진호전투영웅 추모행사’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우리를 위한 고귀한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은이 되는 행사,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이 전쟁의 참상을 깨닫는 데 일조하는 행사가 돼 우리의 기억 속에서나마 장진호 전투 영웅들이 개선하기를 바란다.

김정규·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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